“왜 배우자는 가만있는데 변호사님만 저를 몰아붙이시나요” 이혼조정실에서 자주 듣는 말

가끔 조정실에서 이런 말을 듣는다. “아내는 가만히 있는데 왜 변호사님이 더 그러세요.”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변호사님이 너무 세게 나오시는 것 아닙니까.” 들을 때마다 속으로는 늘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변호사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대리인이다. 단순히 부부싸움 한중간에 끼어든 제3자가 아니란 얘기다. 누군가 너무 지쳐서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 꺼내는 사람이다. 의뢰인이 조용하다고 해서 대리인까지 조용할 이유는 없다. 의뢰인이 지쳤다고 해서 정리해야 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의뢰인이 침묵하고 있을 때 오히려 내가 더 말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긴다.
조정실은 생각보다 조용하다. 사람들은 이혼 조정을 떠올리면 누군가 울고, 화를 내고, 문이 세게 닫히는 장면을 먼저 상상한다. 실제는 다르다. 물 마시는 소리, 종이 넘기는 소리, 의자가 조금 밀리는 소리 정도가 전부다. 누군가는 바닥만 보고, 누군가는 휴대폰 화면을 켰다가 끈다. 누군가는 아이 사진을 잠깐 본다. 그런 공간에서 이상하게 제일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변호사다.
재산분할은 어떻게 할 건지, 양육비는 얼마로 할 건지, 면접교섭은 어떻게 가져갈 건지, 대출은 누가 부담할 건지, 퇴직금은 확인했는지 묻는다. 상대방 입장에서는 내가 괜히 일을 키우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정작 헤어지겠다는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옆자리 사람이 계속 질문하고 있으니 ‘저 변호사는 왜 저렇게까지 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해한다.
내가 맡은 일은 덮어둔 종이를 다시 제대로 펼치는 쪽에 가깝다. 사람들은 이혼할 때 생각보다 많은 것을 포기한다. 지쳐서 포기하고, 미안해서 포기하고, 빨리 끝내고 싶어서 포기한다. 심지어는 아이를 위해서 돈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냥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정실에서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나는 그 말 속 뜻을 안다. 싸우기 싫다는 말이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말이다. 사건을 얼른 마무리 하고 며칠동안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다는 말이다. 오래 싸우는 일은 사람을 닳게 만든다. 어느 순간 사람은 권리보다 평온을 먼저 원한다. 재산보다 잠을 원한다. 승소보다 조용한 저녁을 원한다.
문제는 피곤하다고 대충 넘긴 부분은 나중에 반드시 크게 돌아온다는 점이다. 애매하게 정한 양육비, 흐릿하게 적힌 합의서, 정리하지 않은 재산, 말하지 않은 불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깐 뒤로 밀려날 뿐이다. 오늘 불편한 질문 하나를 피하려다 몇 달 뒤 더 큰 분쟁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많이 본다. 그래서 날카롭고, 때로 귀찮고, 때로 분위기를 깨는 말을 오늘도 조정실에서 던진다. 묻고 또 묻는다.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이 얘기를 지금 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영영 바꿀 기회가 없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 일은 조금 이상하다. 좋은 사람처럼 보이면 마음은 편하다. 분위기도 부드러워진다. 그런데 좋은 사람처럼 보이려다가 중요한 말을 놓치면 그 대가는 의뢰인이 치른다. 그래서 나는 가끔 분위기를 망치는 사람이 된다. “그 부분은 다시 보셔야 합니다.” “그 금액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 조항은 위험합니다.” 말하는 나도 안다. 지금 이 한마디가 조정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도 말한다. 누군가는 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리인은 의뢰인과 함께 지치는 사람이 아니다. 의뢰인이 지쳐서 놓으려는 부분을 대신 붙잡는 사람이다.
사실 집에 돌아가면 나도 평범하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인스타 피드를 보면서 낄낄대는 그런 사람이다. 하지만 의뢰인의 대리인으로 조정실에 들어가는 그 순간만큼은 확실한 역할이 생긴다. 누군가는 침묵한다. 누군가는 포기하려 한다. 누군가는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때 나는 자꾸 묻는다. 정말 괜찮은지. 지금 넘겨도 되는지.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지. 그 질문이 귀찮게 들릴 수도 있다. 괜히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래도 묻는다. 그 질문 하나가 나중의 소송 하나를 막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 “배우자는 가만히 있는데 왜 변호사님이 더 그러시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맞다. 내가 더 말한다. 배우자가 가만히 있어서다. 의뢰인이 너무 지쳐 있어서다. 오늘 조용히 넘긴 문제가 내일 더 큰 후회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나는 변호사다. 그리고 가끔 변호사는 조용한 의뢰인 대신 시끄러워져야 한다. 조정실에서 쿨하게 양보하지 못하고 의뢰인을 위해 악다구니를 쓰는 모습이 멋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그래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커피는 식어도 다시 데울 수 있지만, 다시 내리면 되지만, 이혼조정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금 귀찮은 사람이 되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