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서면 작성법

계약서와 다르게 이행했지만 상대방이 동의했다면? 손해배상소송 피고의 준비서면 작성법

지세훈_변호사 2026. 10. 22. 13:57

 

계약서에는 분명히 A라는 방법으로 이행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계약을 진행하던 중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B라는 방법으로 이행해도 되는지 물었습니다. 원고는 그렇게 하라고 했고, 피고는 그 말을 믿고 계약을 이행했습니다. 실제로 원고는 그 결과물을 받아 사용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 원고가 갑자기 소송을 제기합니다. 계약서에는 A라고 적혀 있는데 피고가 B로 이행했으니 채무불이행에 해당하고,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고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원고가 하라는 대로 했는데 이제 와서 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민사소송에서는 억울하다는 감정만으로 승소할 수 없습니다. 원고가 동의했다는 사실을 법률적으로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증거로 뒷받침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반드시 이해해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내용과 실제 이행이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채무불이행이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계약 체결 이후 당사자의 합의로 계약 내용이 변경되었다면, 채무자가 이행해야 할 의무 역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피고의 준비서면은 원래 계약서와 실제 이행이 다르다는 사실을 무조건 부인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 차이가 발생한 법률적인 이유를 설명하는 방향으로 작성해야 합니다.

먼저 계약 변경의 법적 성격을 이해해야 합니다. 계약은 당사자 사이의 의사 합치에 따라 성립하고, 원칙적으로 당사자들은 합의를 통해 기존 계약의 내용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105조는 임의규정과 다른 당사자의 의사표시가 있는 경우 그 의사에 따르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따라 당사자들은 법률상 제한이나 특별한 형식이 요구되지 않는 범위에서 이행방법, 이행시기, 급부의 내용 등을 변경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변경 합의가 반드시 새로운 계약서의 형태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반적인 계약관계에서는 구두 합의나 문자메시지, 이메일을 통한 합의도 법률상 효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21. 3. 25. 선고 2018다275017 판결은 계약을 해석할 때 형식적인 문구에만 얽매일 것이 아니라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탐구해야 한다는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따라서 피고가 원고와 합의하여 계약 내용을 변경했다면 그 변경된 내용이 이행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래 계약서에 변경은 반드시 서면으로 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그 의미를 별도로 검토해야 합니다. 이러한 조항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후속 구두 합의가 당연히 무효가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서면 작성 없이 중요한 계약조건이 변경되었다는 주장을 인정받기는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결국 준비서면에서는 단순히 원고가 동의했다고 적는 데 그치지 않고, 누가 언제 어떤 조건의 변경을 제안했으며 상대방이 어떤 방식으로 이를 승낙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명시적인 동의와 묵시적인 동의를 구별해야 합니다. 명시적인 동의는 상대방이 변경된 방법으로 진행하라고 직접 말하거나 메시지로 승인한 경우입니다. 반면 묵시적인 동의는 명확한 승낙의 표현이 없더라도 당사자의 행동과 거래 경위에 비추어 계약 변경에 동의했다고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가상의 의뢰인 A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원래 계약서에는 특정 자재를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해당 자재의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A는 발주자인 원고에게 대체 자재의 규격과 가격을 설명했고, 원고는 변경된 자재를 사용하는 공사를 계속 진행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후 원고가 변경된 자재를 확인하고 공사대금을 정산했다면 이러한 사정은 계약 변경 합의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고가 공사 현장에 있었다거나 완성된 결과물을 사용했다는 사실만으로 모든 변경사항에 동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대법원 2016. 10. 27. 선고 2014다88543, 88550 판결은 일방이 계약 내용과 다른 문서를 송부하고 상대방이 이를 받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더라도, 거래의 성질과 관행, 문서의 내용 및 상대방의 태도 등을 종합하여 묵시적 동의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습니다. 특히 계약의 중요한 내용을 변경하는 경우에는 묵시적 동의를 쉽게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따라서 준비서면에서는 원고가 단순히 침묵했다는 사정보다 변경내용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사실, 그 내용을 전제로 후속 업무를 지시했다는 사실, 변경된 이행을 기초로 거래를 정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준비서면은 어떤 구조로 작성해야 할까요. 첫 번째 단계는 원고의 주장과 피고의 반박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입니다. 원고가 계약서의 특정 조항을 근거로 채무불이행을 주장한다면 피고 역시 그 조항의 존재 자체를 무리하게 부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원래 계약의 내용은 인정하되 이후 당사자의 합의에 따라 해당 조항이 변경되었다는 항변을 제시하는 편이 논리적으로 분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준비서면에는 '피고가 최초 계약서에 기재된 방법과 다르게 이행한 사실은 있으나, 이는 원고와 협의하여 변경된 이행방법에 따른 것이므로 원고가 주장하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하지 않습니다'라는 취지로 주장을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 변경 합의의 경위를 시간순으로 설명해야 합니다. 최초 계약 체결일, 변경이 필요해진 사정, 원고에게 변경을 요청한 날짜, 원고가 동의한 방법, 실제 이행한 내용, 결과물을 인도하거나 대금을 정산한 경위를 각각 구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각 사실 옆에는 이를 증명할 자료를 대응시켜야 합니다. 원고가 변경을 승인한 카카오톡 메시지는 갑작스러운 이행방법 변경의 정당성을 설명하는 자료가 될 수 있고, 변경된 설계도나 작업지시서는 변경 합의의 구체적인 범위를 확인하는 자료가 될 수 있습니다. 최종 검수확인서나 정산내역은 변경된 이행을 원고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증거를 많이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증거가 어떤 법률요건을 뒷받침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입증책임도 피고가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입니다. 채무불이행에 기초한 손해배상청구에서 원고는 계약상 의무의 내용, 그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사실, 손해 및 인과관계 등 청구를 뒷받침하는 사실을 주장하고 증명해야 합니다. 반면 피고가 계약 체결 이후 새로운 변경 합의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 변경 합의의 존재와 내용을 뒷받침할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원고가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고 해서 피고의 주장이 자동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원고가 동의했다는 사람이 계약당사자가 아니라 현장 담당자나 실무자였다면 그 사람에게 계약 변경을 승인할 권한이 있었는지도 검토해야 합니다. 단순한 작업 지시 권한과 계약금액 또는 주요 의무를 변경할 권한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고가 변경된 결과물을 수령했다고 하더라도 그 수령이 계약 변경에 대한 승낙인지, 일단 결과물을 보관하면서 하자를 다투기 위한 것인지도 구별해야 합니다. 또한 사전에 변경하기로 합의한 경우와 이미 계약에 위반되는 이행을 한 뒤 상대방이 이를 추인하거나 이의를 포기한 경우는 법률구조가 다를 수 있습니다. 전자는 변경된 계약 내용에 따라 적법하게 이행했다는 주장인 반면, 후자는 이미 발생한 권리나 책임의 처리에 관한 주장입니다. 따라서 사후에 상대방이 결과물을 수령하거나 일부 대금을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손해배상청구권까지 포기했다고 곧바로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준비서면에서는 동의의 시점과 범위, 그에 따른 법률효과를 구분하여 주장해야 합니다.

원고가 자신의 동의 사실을 부인한다면 신의성실의 원칙에 관한 주장도 검토할 수 있습니다. 민법 제2조 제1항은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해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는 계약당사자가 자신의 종전 행동과 모순되는 방식으로 권리를 행사하는 경우에도 문제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고가 피고에게 특정한 방식의 이행을 명확하게 지시했고, 피고가 그 지시를 믿고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여 계약을 이행했는데, 원고가 뒤늦게 원계약과 다르다는 이유로 책임을 추궁한다면 신의칙 위반 여부를 검토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성실의 원칙은 상대방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적용되는 만능 규정이 아닙니다. 피고는 원고의 선행 행위, 그로 인해 형성된 정당한 신뢰, 피고가 그 신뢰를 기초로 행동한 사정, 원고의 후속 권리행사가 왜 모순되는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따라서 준비서면에서는 계약 변경 합의에 관한 주장을 주위적인 항변으로 구성하고,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따라 신의칙 위반에 관한 주장을 추가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나아가 원고가 손해배상을 청구한다면 실제 손해의 발생 여부와 액수도 별도로 다투어야 합니다. 설령 변경 합의가 충분히 증명되지 않더라도 원고가 주장하는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는지, 피고의 이행과 손해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는지, 이미 지급하거나 정산한 금액은 없는지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약위반이 인정되는 것과 원고가 청구하는 손해배상액 전부가 인정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입니다.

결국 계약 내용과 다른 이행에 관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피고의 준비서면은 하나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피고가 최초 계약을 임의로 위반한 것인지, 아니면 원고와 합의하여 변경된 계약을 이행한 것인지입니다. 두 경우는 외형적으로 똑같아 보일 수 있지만 법률적인 평가는 상당히 달라집니다. 원고의 동의로 이행방법이 적법하게 변경되었다면 피고가 그 변경된 내용에 따라 이행한 행위를 종전 계약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채무불이행이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변경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피고의 모든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피고가 실제로 합의된 범위에서 이행했는지, 변경되지 않은 다른 의무를 위반하지는 않았는지, 별도의 하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까지 검토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사건에서 계약서 한 장만 놓고 판단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계약은 처음 작성된 문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 당사자들이 주고받은 대화와 행동 속에서도 구체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계약서라는 명확한 증거에 맞서려면 그에 상응하는 구체적인 자료가 필요합니다. 변경 합의를 주장하는 피고라면 기억에 의존하여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변경을 논의한 순간부터 실제 이행이 완료되기까지의 과정을 객관적으로 복원해야 합니다. 원고가 계약 당시 작성한 문서만 제시한다면 피고는 계약 이후에 발생한 사실들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결국 좋은 준비서면은 상대방을 비난하는 서면이 아니라 법원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약관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이해하도록 만드는 서면입니다. 계약을 체결하고 나서 말을 바꾸는 일이 언제나 허용될 수는 없지만, 당사자가 함께 바꾸기로 한 약속을 나중에 없었던 일처럼 취급하는 것 역시 쉽게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법원이 확인하는 것은 최초 계약서의 문구만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최종적으로 어떤 의무를 부담하기로 합의했고 그 의무가 실제로 이행되었는지입니다. 그 사실을 정확하게 주장하고 증명하는 것이 계약위반 소송에서 피고의 권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