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서면 작성법

임대인이 원상복구비를 마음대로 공제했다면?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 소장 작성법

지세훈_변호사 2026. 9. 21. 12:01

 

“보증금에서 원상복구비 300만 원 빼고 보내겠습니다.” 이사를 마치고 열쇠까지 넘긴 뒤 이런 문자를 받으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상당히 당황스럽습니다. 벽지에 생활 흔적이 조금 남았다는 이유로 도배비 전액을 요구하기도 하고, 오래 사용한 장판이나 싱크대의 흠집까지 새것으로 교체하는 비용을 공제하겠다는 경우도 있습니다. 심지어 견적서 한 장 보여주지 않은 채 임대인이 임의로 금액을 정해 보증금에서 빼고 나머지만 보내기도 합니다. 여기서 먼저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임대차가 끝나면 임차인에게 원상회복의무가 있는 것은 맞습니다. 민법 제654조와 제615조도 임차목적물을 반환할 때 원상회복의무를 예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원상회복의무가 있다’는 말과 ‘임대인이 원하는 금액을 마음대로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법원 역시 원상회복의 범위는 계약 내용, 임대 당시 상태, 임차인이 변경한 내용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 판단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상의 임차인 A를 생각해보겠습니다. A는 3년 동안 아파트에 살다가 계약기간이 끝나 정상적으로 퇴거했습니다. 입주할 때부터 장판에는 사용감이 있었고 벽지도 새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임대인은 퇴거 후 “벽지가 더러워졌다”, “장판에 자국이 있다”, “욕실 실리콘도 다시 해야 한다”며 250만 원을 보증금에서 공제했습니다. A는 자신이 파손한 것이 아니라고 항의했지만 임대인은 “계약서에 원상복구라고 적혀 있으니 끝”이라고 답합니다. 소송을 준비할 때 여기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화가 난 사정을 길게 적는 것이 아닙니다. 임대차계약이 언제 체결되었는지, 보증금이 얼마인지, 계약이 언제 종료되었는지, 목적물을 언제 반환했는지, 임대인이 얼마를 공제했고 실제로 얼마만 돌려주었는지를 시간 순서대로 적어야 합니다.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 소장의 뼈대는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보증금이 얼마였고, 계약이 종료되어 집을 반환했는데, 임대인이 정당한 근거 없이 일부만 반환했으므로 남은 보증금을 지급하라’는 구조입니다.

그다음부터가 진짜 쟁점입니다. 임대인이 공제한 돈이 실제로 임차인이 부담해야 할 원상복구비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임차인이 벽에 큰 구멍을 내거나 임의로 구조물을 설치하고 철거하지 않았다면 당연히 원상회복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반면 사람이 몇 년 동안 정상적으로 거주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노후나 사용 흔적까지 모두 임차인의 책임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법원 판결에서도 사회통념상 통상적인 사용으로 생기는 손모에 대해서는 특별한 약정이 없는 한 임대인이 부담한다고 본 사례가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입주 당시 상태입니다. 원래 낡아 있던 벽지까지 새 벽지로 만들어 놓으라고 할 수는 없고, 전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현재 임차인에게 무조건 철거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습니다. 대법원 역시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임차인은 자신이 임차했을 때의 상태를 기준으로 반환하면 되고, 종전 임차인이 설치한 부분까지 당연히 원상회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 소장을 작성할 때는 ‘원상복구비가 과다하다’라고만 적어서는 조금 아쉽습니다. 임대인이 무엇을 이유로 얼마를 공제했는지 항목별로 나누어 반박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컨대 “도배비 120만 원은 임차인의 고의·과실로 발생한 손상이 아니라 3년간 정상적으로 거주하면서 생긴 통상적인 사용 흔적이다”, “장판은 입주 당시부터 노후되어 있었고 입주 당시 촬영한 사진에서도 동일한 상태가 확인된다”, “싱크대 수리비 50만 원은 구체적인 수리내역과 지출자료가 제시되지 않았다”는 식입니다. 여기에 임대차계약서, 보증금 송금내역, 입주 당시 사진과 영상, 퇴거 직전 사진, 임대인과 주고받은 문자나 카카오톡, 원상복구비 견적서와 실제 공사내역을 붙이면 사건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사진 한 장이 “원래 깨끗했다”와 “처음부터 낡아 있었다”는 두 사람의 기억보다 훨씬 조용하고 정확하게 이야기해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장의 청구취지에서는 원칙적으로 아직 반환받지 못한 보증금 잔액의 지급을 구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보증금이 1억 원인데 임대인이 원상복구비 명목으로 300만 원을 공제하고 9,700만 원만 반환했다면, 원고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나머지 300만 원과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청구하는 구조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목적물의 인도입니다. 임대인의 보증금 반환의무와 임차인의 목적물 반환의무는 원칙적으로 동시이행 관계에 있기 때문에, 아직 집을 인도하지 않았다면 지연손해금이나 이행지체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대법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거나 현실적으로 반환을 제공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임차인의 점유를 곧바로 불법점유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따라서 소장에는 “원고는 2026. ○. ○. 이사를 완료하고 열쇠를 반환하여 이 사건 주택을 피고에게 인도하였다”처럼 인도 사실과 날짜를 명확하게 적어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연손해금의 기산일과 적용 이율은 실제 인도 및 반환 경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사건별로 정확히 계산해야 합니다.

임대인이 “계약서에 원상복구라고 써 있지 않느냐”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특약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임차인은 계약 종료 시 원상복구한다’라는 한 줄이 있다고 해서 모든 시설을 새것으로 바꾸는 비용을 임차인이 부담한다는 뜻이라고 곧바로 해석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상회복의 구체적인 범위는 계약의 체결 경위와 내용, 임대 당시 상태와 임차인이 실제로 변경한 부분 등을 함께 봐야 합니다. 더구나 대법원은 계약서상 원상복구 조항이 있더라도 임대인이 실제로 원상복구할 생각 없이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그대로 이용해 다시 임대하려 한 사안에서 원상복구비용을 보증금에서 공제할 수 없다고 판단한 적도 있습니다. 결국 “특약이 있다”는 것만큼 “그 특약에 따라 실제로 무엇을 원상회복해야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견적서만 받아놓고 실제 공사는 하지 않았는지, 오래된 시설을 신품으로 교체하면서 전액을 임차인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아닌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사람에게 몇십만 원, 몇백만 원의 원상복구비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이미 이삿짐을 옮기고 새로운 집의 보증금과 이사비용까지 부담한 상황에서 받아야 할 돈이 갑자기 줄어들면 마음까지 급해집니다. 그렇다고 임대인이 공제했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모든 원상복구비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입주 당시와 퇴거 당시를 비교하고, 임차인의 책임으로 발생한 손상이 무엇인지, 실제 수리비가 얼마인지 하나씩 분리하는 것입니다. 임대차보증금 반환청구 소장도 결국 같은 일을 합니다. 계약서 한 장, 입주 당시 사진 한 장, 퇴거할 때 찍은 영상, 임대인이 보낸 문자 몇 줄을 시간 순서대로 놓으면 복잡했던 사건이 의외로 단순해질 수 있습니다. 제가 민사사건 기록에서 자주 보는 것은 큰 목소리가 아니라 정리된 기록이 사건을 움직이는 모습입니다. 집은 이미 떠났더라도 그 집에서의 마지막 정산까지 임대인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게 둘 필요는 없습니다. 받아야 할 보증금이 남아 있다면, 감정 대신 계약과 사진, 숫자로 차분히 돌려달라고 요구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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