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법률서면

AI 법률서면 실험실 #10 이번에는 전부 인정하는 준비서면을 써 보자.

지세훈_변호사 2026. 7. 14. 09:35

 

사실 이 실험 시리즈를 처음 시작하려고 했을 때의 목적은 생성형 AI가 동일한 질문에도 일관성이 없는 결과를 내놓는다는 점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러 차례 반복해 본 결과, 그 부분만 계속 검증하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가 없다는 판단에 이르렀다. AI의 답변이 매번 조금씩 달라진다는 사실은 이미 충분히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회차부터는 실험의 방향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보다, 실제 소송에서 자주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법률서면을 AI에게 작성하도록 하고, 그 결과물을 실무적인 관점에서 하나씩 검토해 보는 방식으로 진행하려 한다. AI가 어떤 서면에는 강하고, 어떤 서면에는 약한지 직접 확인해 보는 것이 훨씬 의미 있는 비교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오늘은 대여금반환청구 사건에서 피고가 원고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을 인정하는 전제에서 제일 유리하게 작성된 준비서면 작성을 시켜 보았는데, 과연 생성형 AI는 사건의 핵심을 간결하면서도 설득력 있게 정리했을까. 아니면 형식은 갖추었지만 실무에서 아쉬운 결과물을 내놓았을까. 이제 그 결과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응답 #10

준비서면

사건 : 대여금

원고 : ○○○

피고 : ○○○

피고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1. 차용 사실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로부터 일정 금원을 차용한 사실 자체는 인정합니다.

그러나 원고의 청구는 실제 채권액을 초과하여 청구된 것으로서 이유 없습니다.

2. 변제 사실

피고는 차용 이후 원고에게 수차례에 걸쳐 현금 및 계좌이체의 방법으로 원리금의 상당 부분을 변제하였습니다.

원고는 위 변제사실을 제외한 채 최초 대여금 전액이 미변제된 것처럼 주장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피고는 계좌이체 내역, 금융거래자료, 문자메시지 및 관련 증거를 통하여 변제사실을 입증할 예정입니다.

3. 청구금액 산정의 오류

원고는 이미 변제받은 금액을 공제하지 아니한 채 잔존 채무를 계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실제 남아 있는 채무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원고 주장 금액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4. 이자 및 지연손해금

원고가 주장하는 이자약정은 존재하지 않거나 그 내용이 명확하게 합의된 사실이 없습니다.

설령 대여사실이 인정되더라도 약정이자의 존재는 원고가 이를 입증하여야 할 것이며, 입증되지 않는 이상 법정이율을 초과하는 이자청구는 이유 없습니다.

또한 지연손해금 역시 실제 변제기 및 변제 독촉 시점 등을 기준으로 엄격하게 산정되어야 합니다.

5. 신의칙상 감액의 필요성

피고는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채무를 변제하기 위하여 노력하여 왔으며, 원고 역시 상당 기간 이를 수령하면서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원고가 변제된 금액을 모두 제외한 채 과다한 금액을 청구하는 것은 형평과 신의성실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되기 어렵습니다.

6. 결론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실제 잔존 채무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하여 이유 없으므로 기각되어야 하며, 설령 일부 채무가 인정되더라도 변제된 금액 및 법률상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인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입증방법

  1. 계좌거래내역
  2. 금융거래정보
  3. 문자메시지
  4. 카카오톡 대화내역
  5. 기타 증거자료

20○○. ○○. ○○.

피고 ○○○ (인)

○○지방법원 귀중


지세훈 변호사의 Comment.

이번 결과물의 가장 큰 문제는 모든 가능성을 한꺼번에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 변제도 주장하고, 이자약정도 부인하고, 신의칙도 주장하고, 청구금액 산정도 다투고 있다. 실제 사건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서로 모순되거나 오히려 신빙성을 떨어뜨리는 경우도 많다. 변호사는 사건을 검토한 뒤 가장 설득력 있는 논리를 중심으로 전략을 세우지만, AI는 일단 생각나는 반박 논리를 모두 나열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준비서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거와 주장의 연결이다. "계좌이체 내역이 있다.", "카카오톡이 있다."라고 적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느 날짜의 어떤 송금이 원금 변제인지, 어떤 대화가 변제 합의를 입증하는지, 어떤 증거를 어떤 주장에 연결할 것인지가 재판의 핵심이다. 이 부분이 빠진 준비서면은 겉보기에는 그럴듯해도 실무에서는 설득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증거가 있으면 지금 당장 제출해야 한다. 실제로 법률상담 과정에서 증거는 도대체 언제 내야 하나요? 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이런 내용의 준비서면을 내고 재판에 출석한다면 아마도 판사님한테 한소리 듣고도 남을 것이다. 

더 아쉬운 점은 사건 전체를 바라보는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실은 인정하고 어떤 사실은 끝까지 다툴 것인지, 원고의 주장 가운데 무엇을 먼저 무너뜨릴 것인지, 재판부가 가장 궁금해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전혀 고려하지 못했다. 최소한 물어보기라도 할 줄 알았는데 냅다 적어 내려가 버렸다. 

이번 실험을 통해 다시 확인한 사실은 분명하다. AI는 준비서면의 초안을 만드는 데에는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주장을 버리고 어떤 주장을 살릴지, 어떤 증거를 전면에 내세우고 어떤 논리를 중심으로 사건을 끌고 갈지는 결국 경험이 있는 변호사의 영역이다. 준비서면 한 장도 전략 없이 작성하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그래서 소송에서는 좋은 문장보다 좋은 전략이 중요하고, 그 전략을 만드는 사람이 바로 변호사다. 

라고 오늘도 이렇게 정신승리를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