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칼럼 하나를 읽었다. 어느 카페 화장실에 붙어 있던 안내문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변 금지.' 그냥 적어둔 수준이 아니라, 변기 뚜껑을 아예 구조물로 막아버리고, 근처 공중화장실 약도를 한국어·영어·일본어·중국어 4개 국어로 인쇄해 붙여둔 곳이었다. 칼럼니스트는 그 카페를 비난하지 않았다. 다만 조용히 물었다.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그 질문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카페 사장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이야기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변호사 일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의뢰인이 변호사에게 전화할 때,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혼 소송을 앞두고 처음 전화를 걸어오는 의뢰인들이 있다. 목소리는 대개 두 가지다. 극도로 낮거나, 약간 떨리거나. 어느 쪽이든 그 목소리 안에는 같은 질문이 들어 있다. '이 상황을, 당신이 해결해줄 수 있나요?'
해결. 그 단어가 묵직하다. 어떤 사람은 재산분할을 원한다. 어떤 사람은 양육권을 원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솔직히 말하면, 꽤 많은 사람은, 남편이 반성하기를 원한다. 아내가 잘못을 인정하기를 원한다. 상대방이 고통받기를 원한다. 혹은, 지난 10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법이 확인해 주기를 원한다.
나는 그 마음을 안다. 이해한다. 아니, 그 마음이 옳다고도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해줄 수 없다. 법원도 그것을 해줄 수 없다.
법은 마법이 아니다. 그리고 변호사는 마법사가 아니다.
가사 소송에서 법원이 하는 일은 정확히 이것이다. 혼인 관계의 해소 여부를 결정하고, 재산을 나누고, 아이의 양육 환경을 정하고, 위자료 액수를 산정하는 것. 그것이 전부다.
법원은 "당신이 10년간 얼마나 외로웠는지"를 기록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를 판결문에 주홍글씨를 새기지 않는다. 당신의 억울함이 아무리 크더라도, 법은 그것을 화폐로 환산할 수 있는 만큼만 보상한다. 이것이 냉정해 보이지만, 이것이 법이다.
변호사는 그 법의 언어로 당신의 이야기를 번역하는 사람이다. 번역이 잘 되면 결과가 달라진다. 하지만 번역이 아무리 탁월해도, 원문에 없는 내용을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렇다면 변호사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이혼 소송에서 몇 가지 결정적인 일을 한다.
첫째, 누군가가 놓치고 있는 재산을 찾아낸다. 많은 의뢰인이 상대방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소송에 임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금융거래내역 조회를 해 보면 드러나지 않던 자산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둘째, 주장이 증거로 뒷받침되도록 구성한다. "남편이 외도했다"는 말은 주장이다. 카카오톡 대화, 신용카드 내역 등 여러가지를 제대로 쌓아올려야 증거가 된다. 어떤 증거를 어느 시점에 어떤 방식으로 제출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수도 있다.
셋째, 협상의 언어를 다룬다. 소송은 판결로만 끝나지 않는다. 재판 중에도 조정이 열리고, 합의가 이루어진다. 상대방 변호사와의 협상에서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그 전략적 판단이 사건의 결과를 크게 좌우한다.
그런데 변호사가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변호사는 상대방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법원의 심증을 100% 예측할 수 없다. 의뢰인의 고통을 대신 느끼거나 대신 살아줄 수 없다. 이혼 이후의 삶까지 설계해줄 수는 없다.
그 카페가 화장실 대변을 금지한 것처럼, 어떤 서비스에는 경계가 있다. 그 경계가 냉정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경계를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오히려 당신을 더 잘 돕는 방법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기대를 키워두면, 결국 가장 힘든 순간에 실망하게 된다.
스스로 "혼자 하기 어렵겠다"고 느껴질 때는
이혼 소송을 직접 진행하는 분들이 있다. '나 홀로 소송'이라고 한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절차는 공개되어 있고, 양식은 법원 홈페이지에 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정을 지켜본 적이 있다. 혼자서 답변서를 작성하다가, 상대방 변호사가 제출한 준비서면의 법률 용어에 압도되어 버리는 분들을. 재산분할 협상에서 자신이 포기해야 할 것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구분하지 못해, 나중에서야 억울함을 토로하는 분들을.
법적 절차는 형식만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시점에 어떤 서류를 내야 하는지, 상대방의 주장에 어디까지 반박해야 하는지, 재판부가 중요하게 보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은 경험으로만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의 차이가, 결과의 차이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스스로 혼자 하기 어렵다고 느끼면 신속하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 솔직히 말하면 이혼소송은 죽었다 깨나도 혼자 하는 것보다 변호사 도움을 받는 것이 여러모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는 맛있는 커피를 정성껏 내리는 것만이 카페 주인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카페에서의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하며 곁을 내어주는 것까지가 카페 주인의 일이 아닐까.
변호사도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판결이 확정되는 날, 모든 것은 끝난다. 하지만 의뢰인의 삶은 계속된다. 판결문을 받아 든 손으로 아이의 학교 준비물을 챙기고, 혼자가 된 집에서 처음으로 혼자 밥을 짓는다. 소송은 끝났지만 새로운 삶은 그날부터 다시 시작된다.
나는 그 시작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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