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이라도 뭘 해야 할까.”
요즘 여기저기서 정말 자주 듣는 말이다. 주식 이야기 같기도 하고, AI 이야기 같기도 하고, 부동산 이야기 같기도 하다. 사실은 다 같은 이야기다. 사람들은 뒤처지는 것이 무섭다. 정확히는, 남들은 이미 다음 칸으로 넘어갔는데 자기만 이전 화면에 남겨진 것 같은 기분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한밤중에 유튜브를 켜면 그런 불안을 자극하는 영상이 끝도 없이 나온다. “이 AI 하나로 월 천 벌었습니다.” “지금 이 산업 안 들어가면 끝입니다.” “변호사도 대체됩니다.” 사람은 원래 미래보다 속도를 무서워한다. 미래는 천천히 오지만, 속도는 어느 날 갑자기 자신만 뒤에 남겨두고 달아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ChatGPT가 처음 나왔을 때를 떠올려본다. 사람들은 AI에게 끝말잇기를 시켰다. 억지 문제를 내고, 말꼬리를 잡고, 틀렸다고 놀렸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치 조금 똑똑한 전자장난감을 발견한 사람처럼 굴었다. “이 정도면 아직 멀었네.” 그런 말을 하면서 괜히 안심했다. 인간은 원래 자신을 위협할 수 있는 존재를 처음에는 우습게 만드는 습관이 있다. 그래야 덜 불안하니까.
그런데 몇 년 지나지 않아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사람들은 AI와 끝말잇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AI로 게임을 만들고, 계약서를 검토시키고, 영상을 편집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고, 상담 예약 시스템을 돌린다. 예전에는 “이게 사람 말을 알아듣네?”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이걸 안 쓰면 경쟁이 되나?”의 단계로 넘어왔다.
그 변화를 보고 있으면 가끔 이상한 후회가 올라온다. 아, 그때 그냥 웃고 넘길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진지하게 봤어야 했는데. 장난감처럼 다루지 말고, 도구처럼 분석했어야 했는데. 끝말잇기를 시킬 시간이 아니라, 이게 앞으로 사람들의 노동과 시간을 어떻게 바꿀지를 고민했어야 했는데. 그리고 그에 맞추어 포트폴리오를 짜고 주식투자를 했어야 했는데.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안다. 사실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이 아니다.
세상에는 아주 희귀한 사람들이 있다. 아직 아무도 관심 없는 기술을 보고, 그게 어디로 흘러갈지 미리 감각적으로 알아채는 사람들. 남들이 “별거 아니네”라고 웃을 때 혼자 조용히 판을 읽는 사람들. 아마 그런 사람이었다면 나는 애초에 변호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조용히 회사를 만들었거나, 투자자가 되었거나, 어디선가 이미 큰돈을 벌고 있었겠지.
변호사라는 직업은 조금 다르다. 미래를 예언하는 직업이 아니라, 이미 벌어진 문제를 수습하는 직업에 가깝다. 사람의 욕망과 후회를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혁신가보다는 관찰자에 가깝다.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사람은 아니지만, 새로운 시대에 다친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사람이다.
재미있는 것은, AI가 발전할수록 오히려 인간의 불안은 더 선명해진다는 점이다. 사람들은 흔히 기술이 발전하면 삶이 단순해질 거라고 기대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돈이 벌리고, 글이 써지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현실은 조금 다르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그 도구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결정하는 책임도 커진다.
예를 들어 요즘은 ChatGPT로 만든 내용증명을 서로 주고 받는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문장도 정리돼 있고, 법률용어도 들어간다. 그런데 조금만 들여다 봐도 AI로 작성한 준비서면에 무엇이 빠졌는지, 어떤 표현이 위험한지, 왜 이 문장이 오히려 독이 되는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한다. AI가 등장하면 전문가가 필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 장면도 꽤 많이 벌어진다. 도구가 강해질수록, 잘못 사용했을 때의 사고도 커진다.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지식으로 수술하지 않는 것처럼, 법적 분쟁도 결국 방향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해진다.
수많은 분쟁에서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문제를 너무 늦게 본다. 괜찮겠지 하다가, 설마 이렇게 되겠어 하다가, 일이 이미 꼬여버린 다음에야 전문가를 찾는다. 투자도 비슷하다. 인간은 대개 미래를 보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돈 버는 장면을 본 뒤 움직인다. 그래서 늘 타이밍이 한 박자 늦다. 그러니 너무 자책할 필요도 없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대를 예측하지 못한다. 예측하는 사람보다, 뒤늦게 적응하는 사람이 훨씬 많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미래예측이 아니라, 변화 앞에서 자기 위치를 냉정하게 인정하는 태도다.
이제 AI라는 도구를 무시하는 시대는 끝났다. 예전에는 “저런 것도 하네” 하고 웃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써야 덜 뒤처질까”를 고민하는 단계가 됐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이런 시대일수록 인간적인 판단의 가격은 더 올라간다. 정보는 넘치는데 결정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에게 묻는다.
“그래서 저는 지금 어떻게 해야 하나요.”
변호사가 하는 일도 결국 여기에서 시작된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선택지를 같이 정리하는 일. 혼자 검색하다 보면 오히려 더 불안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법적 문제는 특히 그렇다. 방향을 잘못 잡은 채 오래 끌수록, 시간과 감정의 비용이 훨씬 커진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중 누군가가 혼자 오래 고민하고 있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면, AI에게 묻지 말고 진짜 변호사와 함께 한 번쯤 정리해보셔도 좋겠다. 아무리 AI에게 물어봐도 이미 꼬인 문제를 더 크게 만들지 않는 선택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은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얻는다 하더라도 매번 다른 답변을 받을 것이다. 결국 어느 답변이 옳은지는 변호사만이 알려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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