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생성형 AI에게 대여금반환청구 사건의 답변서 작성을 맡겨 보기로 하였다. 지금까지는 소장과 고소장을 중심으로 실험을 진행했지만, 이번에는 피고의 입장에서 이미 돈을 갚았지만 딱히 증거가 남아있지 않은 경우 원고의 청구를 어떻게 반박하는지 확인해 보기로 했다.
사실 답변서나 준비서면은 민사소장의 청구취지처럼 엄격한 형식을 요구하는 문서는 아니다. 핵심은 형식보다 주장이다. 상대방의 주장을 어떤 논리로 반박할 것인지, 어떤 사실을 인정하고 어떤 사실을 다툴 것인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구조만 갖추면 작성 자체는 비교적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이번 실험에서는 오히려 AI에게 조금 더 유리한 조건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정해진 형식에 얽매이기보다 논리적인 주장만 전개하면 되기 때문이다. 과연 생성형 AI는 피고의 입장에서 설득력 있는 답변서를 작성했을까. 아니면 이번에도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았을까.
응답 #9
답 변 서
사건번호 : (기재)
원 고 : (기재)
피 고 : (기재)
청구취지에 대한 답변
-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
- 소송비용은 원고의 부담으로 한다.
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청구원인에 대한 답변
1. 피고는 원고로부터 금원을 차용한 사실은 인정합니다.
2. 그러나 피고는 위 차용금을 이미 모두 변제하였습니다. 피고는 약정한 변제기 또는 그 이후 원고에게 대여금 전액을 현금으로 지급하여 채무를 모두 이행하였으며, 원고 역시 당시 이를 수령하였습니다. 다만 당시 원고와 피고는 서로 신뢰관계에 있었던 관계로 별도의 영수증을 작성하거나 계좌이체 방식으로 지급하지 않았고, 현재 변제를 직접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3.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습니다.
이미 변제가 완료된 채무에 대하여 다시 대여금의 지급을 구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습니다. 피고는 변제 이후 원고로부터 장기간 추가적인 변제 요구나 독촉을 받은 사실이 없었으며, 이는 당시 원고 역시 채무가 모두 변제되었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사정입니다. 또한 원고는 피고가 변제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대하여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사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미 소멸한 채권을 근거로 청구를 제기한 것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모두 기각되어야 합니다.
결 론
이 사건 대여금 채무는 이미 전부 변제로 소멸하였으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습니다.
이에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 ○. ○.
피고 : (서명 또는 인)
○○지방법원 ○○지원 귀중
지세훈 변호사의 Comment
겉으로 보면 꽤 그럴듯하다. 답변서 형식도 갖추고 있고, 문장도 자연스럽다. 넘버링이 어색한 것은 뭐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 문제는 피고가 이 답변서를 제출하면 재판에서 거의 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변제했다."라는 결론만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사소송에서 변제는 대표적인 항변이다. 항변을 하는 사람은 단순히 "갚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얼마를, 어떤 방법으로, 누구 앞에서 지급했는지까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주장하고 입증해야 한다. 그런데 AI는 핵심인 변제 사실은 오히려 가장 추상적으로 써 버렸다.
더 심각한 부분은 스스로 불리한 사정을 지나치게 자세히 적었다는 점이다. "현금으로 지급했고, 영수증도 없고, 계좌이체도 아니며, 현재 입증자료도 남아 있지 않습니다."라는 문장은 사실상 원고 입장에서 가장 인용하고 싶은 문장이다. 피고에게 유리한 답변이라기보다, 원고가 준비서면에서 그대로 인용할 만한 자백에 가까운 내용이 되어 버렸다.
또한 "원고가 장기간 독촉하지 않았다."는 사정 역시 자동으로 변제를 추인하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여금 사건에서는 친분 때문에 독촉을 미루거나 관계가 악화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따라서 이 사정 하나만으로 변제 사실을 뒷받침한다고 단정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상당히 약하다.
결국 AI는 답변서를 형식상 작성한 것에 불과하다. 좋은 답변서는 사실을 나열하는 문서가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공격할지 예측하고, 그 공격을 미리 차단하는 문서이다. 이런 부분은 아직 AI가 가장 취약한 영역이다. 그래서 이번 실험 역시 같은 결론으로 끝난다. AI는 초안을 만들어 줄 수는 있다. 그러나 재판에서 이길 전략을 세우는 일은 아직 변호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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